미국의 대표적인 추상 표현주의 화가인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은 그의 특이한 작업 방식과 독특한 스타일로 현대미술하면 먼저 떠오르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20세기 미국 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폴록은 삼류라고 인식되었던 미국 미술을 오늘날의 지위로 올리는데 큰 공을 세웠다는 점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작품은 주로 드리피즐(Drip paintings)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그가 캔버스 위에 흘리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독특한 화법입니다.
생애
폴록은 20세기 중반 미국의 작가로, 1912년에 애리조나 주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미술에 대한 열정을 보였으며, 뉴욕의 아트 스튜디오 스쿨을 거쳐 예술가로서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이로 인해 가족 관계가 악화되고 재정적으로 불안정해졌습니다. 재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의 어머니는 그를 지지해 주었고, 그에게 미술에 대한 사랑을 심어주었습니다. 그의 어머니의 지원은 그의 예술적 발전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가족은 어린 시절 취업 기회를 찾기 위해 여러 번 이사했습니다. 이러한 잦은 이사로 인해 그는 다양한 풍경과 문화에 노출되었고 이후 그의 예술적 감성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는 퇴학을 밥 먹듯 당했지만, 1930년에 뉴욕에 정착한 이후로는 미술 공부에 전념했습니다. 초기에는 표현주의적인 작품을 그렸지만 1930년대부터 추상화로 전향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대중적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드리피즐 기법 (Drip paintings)
잭슨 폴록은 1947년 마룻바닥에 편 화포 위에 공업용 페인트를 떨어뜨리는 '드리핑' 기법을 만들면서 급격하게 유명해졌습니다. 잭슨 폴록은 바닥에 천을 놓고 막대기에 물감을 묻힌 뒤에 흩뿌리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이렇게 완성된 그림은 어떤 형체는 보이지 않고 마치 실타래가 엉킨 듯한 물감 자국만이 남았습니다. 한스 나무스가 이 방식으로 작업하는 폴록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후대에 '액션 페인팅'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습니다. 오늘날에는 파격적이지 않을 수 있으나, 처음 등장한 당시엔 매우 파격적인 기법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인 'No. 31'의 제작연도는 1950년입니다. 6.25 전쟁이 발발된 해 이기도 하며, 대한민국이 광복 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시기입니다. 그 당시 액션 페인팅 시도는 누드화의 등장만큼이나 파격적이었습니다. 당시 평단에서는 물감을 뚝뚝 떨어뜨리는 그림을 그린다며 잭슨에게 잭 더 드리퍼(Jack The Dripper)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발음이 비슷한 살인마 잭 더 리퍼처럼 지금까지의 미술을 죽여 버렸다는 의미에서 붙인 별명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독특한 작업방식 때문에 대부분의 작품 크기가 굉장히 큽니다. 마침 고층빌딩이 많이 세워지면서 그 빈 벽에 걸 그림이 부족했던 미국 갑부에게 폴록의 그림은 굉장히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의 그림은 인테리어 소품으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작품의 평가과 매너리즘
잭슨 폴록의 작품은 다양한 해석으로 이야기됩니다. 그의 추상적인 무언가는 각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는 그가 의도적으로 구상을 배제함으로써 작품을 보는 이의 경험을 개인적이고 독특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거칠고 파격적인 추상 회화를 통해 20세기 미술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지만, 그에 비례해서 부담감이 컸다고 합니다. 후기에는 자기 스스로 이러한 작업방식에 매너리즘을 느껴 다시 표현주의로 회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선지 폴록은 알코올 의존증이었고, 안타깝게도 44세의 젊은 나이에 애인과 친구들을 태우고 음주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폴록의 작품은 그의 죽음 이후에도 많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결과물과 물질만을 예술로 인정받았던 시기에서, 제작의 과정과 의도 역시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의의가 있으며, 개념미술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다고 평가받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독특한 회화 장르와 개념은 후대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의 작품은 현대 미술의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있습니다.